지난 6월 11일, 중국 베이징의 한 경매장에서 인형 하나가 무려 2억 원이 넘는 금액에 낙찰됐습니다. 단 하나뿐인 이 희귀 피규어의 이름은 '라부부(Labubu)'. 토끼 귀에 복슬복슬한 털, 뾰족한 이빨까지 어딘가 괴상하면서도 매력적인 이 캐릭터는 전 세계 수집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라부부는 중국의 아트토이 브랜드 팝마트(Pop Mart)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홍콩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카싱 룽(Kasing Lung)'이 창조한 몬스터 엘프 콘셉트에서 출발했습니다. 2019년부터 블라인드 박스 형식으로 정식 출시되었지만, 본격적인 인기는 2023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블랙핑크의 리사가 라부부 키링을 들고 찍은 사진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이 귀엽고 괴상한 인형은 단숨에 MZ세대의 '잇템'으로 떠오르게 됐습니다.
셀럽이 만들고, 희소성이 키운 캐릭터
리사에 이어 리한나, 데이비드 베컴 등 글로벌 셀럽들이 라부부 피규어를 소지한 모습이 포착되면서, 한때 '뽑기 장난감'으로 여겨졌던 이 캐릭터는 트렌드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인기 비결은 단순한 귀여움이나 감정적 공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라부부는 '희소성과 밈(Meme)'의 속성을 지닌 캐릭터로, 특유의 생김새와 반복 구매를 유도하는 구조 덕분에 소장 그 자체가 콘텐츠가 되는 현상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시크릿 에디션'은 144분의 1 확률로만 등장해 수십만 원에 리셀되기도 합니다. 희귀성, 기대감, 인증 문화까지 이 모든 것이 맞물리며 라부부는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습니다.
라부부 하나로 최고 부자까지
이런 인기 덕분에 팝마트의 주가도 고공 행진을 이어갔습니다. 팝마트는 2020년 홍콩 증시에 상장된 이후, 라부부를 중심으로 한 IP 전략, 블라인드 박스 판매 방식, 그리고 글로벌 시장 확장을 통해 매출과 수익성 모두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라부부를 "차세대 헬로키티"로 칭하며, 팝마트가 2027년까지 연평균 42% 고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창업자 '왕닝(Wang Ning)'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중국 장난감 업계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자리 잡았습니다.
라부부, 시리즈별 매력 탐구
라부부의 인기에는 다양한 시리즈 제품들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각기 다른 콘셉트와 디자인은 마치 '캐릭터 수집 여행'을 떠나는 듯한 재미를 줍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았던 세 가지 시리즈를 소개합니다.
🍬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마카롱, Exciting Macaron 시리즈
달콤한 파스텔 컬러와 포근한 질감이 특징인 이 시리즈는 라부부의 기본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복슬복슬한 털, 귀여운 이빨, 그리고 부끄러운 듯 붉어진 볼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회색 컬러의 '세서미 빈' 디자인은 블랙핑크 로제가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화제가 되었습니다.
🥤 귀여움에 탄산 한 방울, 코카콜라 협업 시리즈
라부부가 빨간 모자를 쓰고 콜라병을 안고 있는 모습,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나올 만큼 유쾌합니다. 이 시리즈는 팝마트와 코카콜라의 협업으로 탄생했으며, 디테일도 돋보입니다. 시크릿 피규어는 콜라색 갈색 털을 가진 특별 버전으로, 작은 콜라 캔 안에 쏙 들어가 있는 포즈로 수집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 팬심을 저격한 원피스 콜라보 시리즈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애니메이션 '원피스'와의 콜래버는 또 하나의 히트작입니다. 루피, 조로, 나미 등 주요 캐릭터들이 라부부 특유의 몬스터 스타일로 재해석돼 독특한 매력을 뽐냈습니다. 총 13종으로 구성되어 있어 원피스 팬과 라부부 팬 모두의 수집 욕구를 자극했습니다.
"뽑기의 짜릿함, 블라인드 박스 전략"
라부부의 인기 뒤에는 단순히 '귀여운 캐릭터' 이상의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그 핵심은 바로 '블라인드 박스(Blind Box)'입니다.
소비자는 박스를 열기 전까지 어떤 디자인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무작위성은 일종의 기대감과 놀라움, 그리고 '운'을 믿는 재미로 이어집니다.
특히 '시크릿 피규어'의 등장 확률은 144분의 1이라는 극한의 희귀성을 자랑해, 반복 구매를 유도하고 리셀 시장까지 형성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 왜 랜덤에 열광할까?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MZ세대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분석합니다.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통제할 수 없는 '운'에 기대는 위안을 느낍니다.
일부 소비자에게는 팝마트 매장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이 일종의 '루틴'이자 소소한 복권 체험이 되는 셈입니다. 2023년 기준, 팝마트 전체 매출의 84%는 블라인드 박스에서 나왔습니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선 핵심 비즈니스 모델임을 입증했습니다.
여기도 라부부, 로보숍 전략
팝마트는 라부부와의 '우연한 만남'을 설계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무인 자판기 '로보숍(Robo Shop)'이 있습니다. 2021년부터 중국 전역에 2,000대 이상 설치된 이 자판기는, 누구나 손쉽게 아트토이를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유통 채널이 되었습니다.
무인 자판기는 접근성을 높이고, 복잡한 절차 없이 즉각적인 구매 경험을 제공합니다. 이는 소수 마니아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팬덤을 형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됩니다.
길을 걷다가 무심코 구매한 하나의 피규어가 라부부 세계로 들어서는 입구가 되는 셈입니다.
라부부 이후, 팝마트의 숙제
물론 잘나가는 팝마트에도 리스크는 존재합니다. 가장 큰 고민은, 캐릭터란 본질적으로 '유행을 타는 소비재'라는 점입니다. 처음엔 '맛집처럼' 너도나도 몰려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관심이 식는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짱구, 헬로키티, 산리오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캐릭터들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이야기 구조를 통해 지속적으로 소비자와 정서적 유대를 쌓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귀엽거나 희귀하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속 가능성이 생깁니다.
반면 라부부는 몰입 가능한 서사 구조가 약합니다. 캐릭터별 설정과 세계관은 존재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며 감정이입할 수 있는 드라마나 서사적 경험은 부족한 편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라부부가 '금방 질릴 수도 있는 캐릭터'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를 잘 아는 팝마트는 현재 새로운 IP 발굴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수많은 시리즈를 부지런히 런칭하며 '포트폴리오 다각화 전략'을 펼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의 캐릭터에 올인하기보다는, 다양한 취향과 트렌드에 대응할 수 있도록하는 전략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마치며: 캐릭터 비즈니스의 미래
라부부 현상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현대 소비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줍니다. 희소성과 랜덤성, 그리고 SNS를 통한 인증 문화가 결합되어 만들어낸 독특한 성공 사례입니다.
여전히 캐릭터는 브랜드에게 있어 가장 안전하고 강력한 무기입니다. 실존 인물과 달리 구설수에 오를 일도, 논란이 생길 일도 없이, 우리에게 재미와 위로, 그리고 잠깐의 도피처 같은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팝마트는 아마도 이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기업일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라부부라는 단일 IP의 한계를 넘어서, 지속 가능한 캐릭터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과연 팝마트가 라부부 이후의 '제2의 라부부'를 탄생시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