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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전시 추천, 히무로 유리 : 오늘의 기쁨

2025.12.19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는 전시를 찾고 있다면, 그라운드시소 한남에서 열리는 〈히무로 유리 : 오늘의 기쁨〉을 주목해 보세요.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천 소재 작품들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최근 로에베와의 협업으로 화제를 모은 일본 텍스타일 디자이너 히무로 유리의 국내 첫 개인전입니다.

오늘은 전시를 더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작가와 작품 이야기를 중심으로, 연말에 즐기기 좋은 크리스마스전시로서의 매력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텍스타일 아티스트, 히무로 유리

이미지 출처: @loewe, YURIHIMURO

 

히무로 유리는 최근 스페인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Loewe)와의 협업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로에베 공식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협업 릴스 영상은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죠. 잔디밭 위에 로에베 로고가 등장하는 짧은 영상은 독특한 비주얼과 참신한 연출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외에도 포르쉐, 몰스킨, 키티버니포니, 호시노 리조트 등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 및 공간과의 협업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꾸준히 확장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이번 히무로 유리 : 오늘의 기쁨 전시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자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사람들이 웃거나 기뻐하는 순간은 언제일까를 생각해봤을 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는 찰나가 그런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히무로 유리 (그라운드시소 전시 영상 중)-

 

 

 

파란 실을 자르면 넘실대는 파도가 되고, 풀잎 사이를 자르면 작은 곤충이 불쑥 튀어나옵니다. 하늘에서는 비행기가 지나간 뒤 남는 비행운을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볼 수도 있죠. 작가는 실의 질감과 원단을 다양한 방식으로 잘라내며,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장면들을 천 위의 풍경으로 비유합니다.

히무로 유리는 일상에서 보고 느낀 즐거운 순간들을 천 위에 옮겨놓고, 색과 형태를 세심하게 선택한 뒤 ‘어디를 어떻게 자를지’를 고민합니다. 이렇게 작가의 의도와 관람객의 참여가 만나 하나의 작품이 완성됩니다.

 

 

작가의 독특한 작업 방식, 스닙 스냅(SNIP SNAP)

 

히무로 유리는 ‘이 천을 자르면 어떤 그림이 나타날까?’라는 질문에서 디자인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무늬를 먼저 그리는 대신, 실 하나하나가 위로 올라갈지 아래로 내려갈지를 결정하는 직조 설계도부터 만듭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핀란드 알토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머물며 익힌 자카드 직조 기법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카드 직조는 세로 실인 날실과 가로 실인 씨실이 어떤 순서로 위아래를 오르내리느냐를 설계해 복잡한 무늬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픽셀 아트에서 픽셀 하나하나를 켜고 끄듯, 자카드 직조 역시 실 하나하나의 ‘올림’과 ‘내림’을 조합해 이미지를 구성합니다. 히무로 유리는 이 과정을 머릿속에서 먼저 그림처럼 상상한 뒤, 그것을 설계도로 옮긴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대표작 ‘SNIP SNAP’ 시리즈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SNIP SNAP은 겉과 속, 두 겹으로 짜인 직물로, 겉면만 보았을 때는 단순한 패턴처럼 보이지만 가위로 천을 자르면 그 아래 숨어 있던 전혀 다른 무늬가 드러납니다. 작품명 ‘SNIP SNAP’은 가위질할 때 나는 ‘싹둑싹둑’ 소리에서 따왔습니다.

 

같은 원단이라도 결과가 모두 다른 이유는, 어디를 얼마나 어떻게 자를지를 작가가 아니라 작품을 마주한 사람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히무로 유리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참여형 예술로 확장됩니다.

 

 

따뜻한 소재가 주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

 

천은 우리 삶에서 가장 가까운 소재입니다. 이불을 덮고 잠을 자고, 옷을 입고, 소파에 앉고, 커튼을 여는 모든 순간에 천은 함께합니다. 히무로 유리는 이렇게 일상에 스며든 천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습니다.

차가운 금속이나 딱딱한 나무와 달리, 천의 부드러움은 사람들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열게 만듭니다. 즐거운 디자인을 만들고 싶다는 작가의 생각은 사용자가 직접 참여하는 직물을 만드는 방향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가 바로 ‘스닙 스냅’ 시리즈입니다.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난 이후에는 사람들이 천을 만지고, 실을 자르며 각자의 이야기를 더하게 됩니다.

 

 

크리스마스전시에서 꼭 보고 싶은 작품들

이번 전시는 총 170여 점의 작품을 8개의 챕터로 나누어 선보입니다. 그중에서도 스닙 스냅의 특징이 특히 잘 드러나는 작품 몇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1. 잔디 안에 숨은 거대한 곤충 생태계 – SHIBA

 

SHIBA(잔디)는 전시 초반에 등장하는 작품으로, 작가가 할머니 집 잔디밭에서 얻은 기억에서 출발했습니다. 잔디를 깎으면 깔끔한 줄무늬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메뚜기나 작은 곤충들이 튀어나오던 장면이 작품에 담겨 있습니다. 가위로 자른 부분에서 숨어 있던 곤충들이 드러나는 순간, 스닙 스냅의 매력이 직관적으로 느껴집니다.

 

 

2. 숨겨진 공룡을 찾아서 – HAKKUTSU

 

HAKKUTSU(발굴)는 노란 실을 자르면 땅속에 묻혀 있던 공룡 뼈와 고대의 토기가 나타나는 작품입니다. 천 안에 숨겨진 무언가를 직접 ‘발굴’하는 경험은 관람객에게 자연스러운 호기심과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3. 핀란드 유학 시절의 기억 – LAPLAND

 

LAPLAND는 핀란드 유학 시절의 여행 기억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눈 덮인 풍경 속에서 자연과 동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장면이 담겨 있으며, 온도에 반응하는 천 소재를 활용해 불을 피우는 듯한 장면을 작품에 표현해낸 연출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불을 표현한 부분에 손으로 5초간 대고 있으면, 사진처럼 색이 변합니다.

 

 

일상의 사소한 기쁨을 작품에 녹여내는 작가

전시 중간에는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담은 인터뷰 영상이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 히무로 유리가 일상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유튜브 ‘Groundseesaw’

 

영상 속 작가의 일상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반려견과 산책하며,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합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일상 속에서 작가는 중요한 순간들을 발견합니다.

 

이미지 출처: 유튜브 ‘Groundseesaw’

 

히무로 유리는 찰나의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을 유심히 바라보며, 달라진 풍경에서 즐거움을 찾습니다. 자신이 살아오며 마음에 남았던 장소들은 자연스럽게 작품의 모티프로 이어집니다. 휴일에는 차를 몰고 먼 공원으로 산책을 떠나고, 밤에는 드라이브를 하며 낮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도심의 풍경에서 또 다른 영감을 얻습니다.

 

 

전시 동선을 따라 작품을 마주하다 보면,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일상 속에서도 사람을 미소 짓게 만드는 장면을 발견하려는 작가의 시선이 조용히 전해집니다.

 

 

끝으로

 

문득 하루하루가 단조롭고 뻔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삶이 그저 같은 시간에, 같은 길로, 같은 곳을 향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를 미소 짓게 하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이번 전시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작품과 삶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곳곳에 녹아 있는 세심한 디테일까지 오늘 소개한 이야기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를 담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따뜻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전시를 찾고 있다면 꼭 한 번 방문해 보길 추천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일상 속에서, 우리도 잠시 멈춰 서서 가까운 곳에 숨어 있는 작은 행복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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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er | 서비